용주사 순례(110327)

2011. 3. 27. 21:31<문화유산>/사찰순례

용주사 가는 길 : 지하철(1호선) 병점역 하차 → 시내버스(34번 승차) → 용주사 앞 하차

 

용주사 소개 : 본래 용주사는 신라 문성왕 16년(854년)에 창건된 갈양사로써 청정하고 이름 높은 도량이었으나 병자호란 때 소실된후 폐사되었다가 조선시대 제22대 임금인 정조(正祖)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으로 옮기면서 절을 다시 일으켜 원찰로 삼았습니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부왕에 의해 뒤주에 갇힌 채 8일만에 숨을 거둔 사도세자의 영혼이 구천을 맴도는 것 같아 괴로워 하던 정조는 보경스님으로부터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설법을 듣게되고 이에 크게 감동, 부친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절을 세울 것을 결심하면서 경기도 양주 배봉산에 있던 부친의 묘를 천하제일의 복지(福地)라 하는 이곳 화산으로 옮겨와 현릉원(뒤에 융릉으로 승격)이라 하고, 보경스님을 팔도도화주로 삼아 이곳에 절을 지어 현릉원의 능사(陵寺)로서 비명에 숨진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수호하고 그의 명복을 빌게 하였습니다. 불교가 정치적 사회적으로 억압을 당하고 있던 당시에 국가적 관심을 기울여 세웠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낙성식날 저녁에 정조가 꿈을 꾸었는데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했다 하여 절 이름을 용주사라 불렀고 그리하여 용주사는 효심의 본찰로서 불심과 효심이 한데 어우러지게 되었습니다. 전국 5규정소(糾正所:승려의 생활을 감독하는 곳) 중의 하나가 되어 승풍을 규정했으며, 팔로도승원(八路都僧院)을 두어 전국의 사찰을 통제했습니다. 또한 일찍이 31본산의 하나였으며 현재는 수원, 용인, 안양 등 경기도 남부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80여개의 말사, 암자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현재 절의 신도는 약 7천여 세대에 달하며 정기, 비정기적으로 많은 법회가 이루어지고 또 법회를 통해 교화활동을 행하고 있습니다. 용주사는 이와 같은 수행자들이 모여 면벽참선하면서 진리를 찾고 한편으로는 다양한 대중포교 활동을 통해 부처님의 지혜를 전하며, 또한 정조의 뜻을 받들어 효행교육원을 설립, 운영을 통해 불자교육을 서원으로 일반인도 누구든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효행교육으로 불교신행관과 인성교육을 사회로 회향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용주사 홉페이지 사찰소개 인용>

 

순례소감 : 경기도 남부지역의 80여개의 말사와 암자를 거느리고 있는 용주사를 순례하고 싶은 맘이 마침내 오늘 이루졌다. 용주사에 도착하니 점심공양시간이 되어 염치불구하고 식당부터 찾았다. 넓직한 식당에는 많은 신도들과 어린학생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국수를 공양받았다. 지금까지 먹어왔던 국수는 끈기없이 쉽게 풀어지는 푸석푸석한 맛이 였고 그래서 국수를 싫어 하게 되었는데 오늘 먹은 국수는 국수가락이 찰져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이런 국수라면 계속이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비교적 넓은 사찰경내에는 주로 효도와 관련된 많은 유물들이 남아 있었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을 위해 지은 절이니 만큼 당연한 일일 것이다. 식당에서도 스님을 뵙지만 경내에서도 많은 스님을 뵐 수 있었다. 다른 절과는 다르게 이곳 스님들은 신도들과 자주 접촉하면서 격의 없이 지내는 것 같았다. 경내에서는 신도교육이 한창이였다. 불경을 따라 외우는 듯 경내에 염불소리 가득하였다. 특히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많은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였다. 격의없어 보이는 스님들과 열심히 공부하는 보살님과 거사님 그리고 어린학생들이 용주사에 가득하였다. 불교의 미래를 보는 듯하여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