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삼사 순례1(보문사-정수사-전등사)(110424)

2011. 4. 25. 02:10<문화유산>/사찰순례

■ 보문사 순례(보문사 홈페이지 인용)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한국의 3대 해상관음기도장 가운데 하나이다. 635년(선덕여왕 4)에 창건했다고 하며, 이 마을에 살던 한 어부가 그물을 쳤다가 불상과 나한상 22구를 건져올렸는데 꿈에 나타난 스님이 일러준 대로 현재의 석실(石室)에 봉안했다는 전설이 있다. 1812년(순조 12)에 홍봉장의 도움을 받아 중건했으며, 1893년(고종 30)에는 민비의 전교로 요사와 객실을 중건하는 등 여러 차례의 중건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 당우로는 대법당·관음전·나한전·대방·종각·석실 등이 있다. 특히 이 절의 역사를 대표하는 순례지인 석실(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7호)의 입구에는 3개의 홍예문이 있고, 동굴 내에는 반원형의 좌대를 마련하고 탱주(撑柱)를 설치했는데 그 사이에 있는 21개의 감실(龕室)에는 석불을 안치했다.

 

<극락보전>

보문사 극락보전 (아미타전)

극락전 혹은 극락보전은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교주이시며 중생들의 왕생극락을 인도하시는 아미타부처님과 그 협시보살 모신 법당이다. 사찰에 따라서 미타전, 아미타전, 무량수전, 수광전이라고도 하는데, 낙가산 보문사에서는 큰법당으로서 많은 불자들의 귀의처가 되고 있다.

극락보전의 부처님

극락보전에는 아미타부처님과 그분의 협시보살로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혹은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모셔진다. 일찍이 아미타부처님이 법장비구로 수행하던 시절에 그 유명한 48대원을 세워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모든 것이 아름답기 그지없는 서방의 극락정토를 건설하셨다고 한다. 그때 세웠던 서원에 따라 누구나 일념으로 ‘아미타불’이란 명호만을 불러도 극락에 왕생시켜 괴로움을 물리치고 불도에 정진할 수 있도록 해주시는 대자대비하신 분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 아미타불신앙은 예로부터 사후신앙과 관련하여 서민들의 마음 속에 깊이 자리잡아 왔다. 따라서 전국의 사찰에는 아미타부처님이 석가모니부처님 다음으로 많이 모셔져 있다. 아미타부처님은 설법인을 취하고 있거나 미타정인(九品印)이라고 부르는 다양한 수인을 하고 계신다.

극락보전의 후불탱화

극락전의 후불탱화에는 주존이 설법인이나 미타정인을 취한 아미타부처님이며 좌우 협시보살로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혹은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배치된다. 보문사의 극락보전은 협시보살로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봉안하고 있다. 그런데 아미타불탱화는 석가모니부처님과 아미타부처님의 주존상과 협시보살만 다를 뿐 대웅전의 후불탱화인 영산회상도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통례이다. 왜냐하면 아미타신앙은 『정토 3부경』에 의한 신앙인데, 이 경전들을 설하신 분이 바로 석가모니부처님이고 듣는 이가 『법화경』에서와 마찬가지로 대중이기 때문이다.

보문사극락보전은 동양 최고의 관음기도도량답게 수많은 불자님들의 염원을 담아서 스님들의 염불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나한전>

나한전 부처님의 제자인 16나한 혹은 500나한상을 모신 전각이다. 우리나라의 나한전 가운데 500나한을 모신 곳으로는 경주 기림사 나한전, 영천 은해사 거조암, 전주 송광사 나한전 등이 유명하다. 보문사의 석굴나한전은 다른 곳과는 달리 18나한님을 모신 곳으로 유명하다. 설화 속에서 알 수 있듯이 보문사석실의 나한님들은 중생을 구제하기위하여 먼곳으로부터 나투신 부처님의 제자들로서 많은 불자들의 귀의처가 되고 있다.

나한전의 부처님

나한전은 부처님의 제자들을 모시기 위한 전각이지만 그분들은 모두 석가모니부처님의 제자이므로 주존으로는 영산전에서와 같이 석가모니부처님을 위시하여 협시보살로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을 모신다. 말하자면 과거불인 정광여래의 화신 제화갈라보살과 현재불인 석가모니부처님 및 미래불인 미륵보살을 모셔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를 상징하고 그 좌우로 8위씩 16나한을 모시거나 500나한을 모시는 것이다.

‘나한’이란

인도의 옛말 아르하트에서 온 말로 아라한 또는 줄여서 나한이라고 하는데 뜻으로 옮겨 ‘응공, 무학, 응진’이라고도 한다. 본래는 존경받을 만한 분, 공양받을 만한 분이라는 의미로 석가모니부처님도 처음에는‘아라한’이라 불렸다 한다. 특히 초기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제자들이 수행을 통해 다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 곧 현실의 모든 번뇌와 고통을 여읜 해탈의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뜻에서 ‘무학’이라고도 하고 진리에 도달했다는 뜻에서 ‘응진’이라고도 하는 것인데, 대승불교에 이르러서는 불자들의 목표가 무수한 생을 거듭해서라도 보살도를 완성하여 스스로 부처님이 되는데 있었으므로 아라한은 소승의 수행자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그런데 역대로 이와 같은 아라한은 무수히 배출되었지만, 나한전에는 석가모니부처님의 직제자 가운데 정법을 지키기로 맹세한 16나한을 모시거나 특별히 석가모니부처님이 입멸하신 후 부처님 생전의 가르침을 정리하고 편집하기 위한 모임인 경전결집에 참여했던 500나한을 모시고 있다.

보통 16나한을 모시지만 간혹 18나한을 모시기도 한다.

16나한의 이름

①빈도라발라사 ②가낙가벌차 ③가낙가발리타사 ④소빈타 ⑤낙거라 ⑥발타라 ⑦가리가 ⑧벌사라불다라 ⑨술박가 ⑩반탁가 ⑪라호라 ⑫나가서가 ⑬인게타 ⑭벌나파사 ⑮아시다 16주다반탁가

한편 나한은 부처님이 되지는 못했지만 이미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성자이므로 초자연적인 신통력과 더불어 독특한 표정과 자유스러운 자세를 갖고 있다. 또한 나한은 미래불인 미륵불이 나타날 때까지 중생들을 제도하라는 부처님의 수기를 받은 분들이다. 따라서 민간신앙에서는 나한에 대한 무수한 설화들이 등장하게 되었고 서민들의 기복신앙으로 확고히 자리잡게 되었다.

 

<마애관음좌상>

성보문화재

보문사가 관음 도량의 성지임을 가장 잘 상징하는 성보문화재로서,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멀리 서해바다가 한 눈에 조망되는 등 경치가 장관이다. 특히 낙조(落照) 경관은 아주 일품이어서 수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붉은 해와 노을을 쳐다보노라면 종종 그야말로 무아지경 불심(佛心)의 경지에 들곤 한다.

이 관음좌상은 대웅전과 관음전 사이에 있는 계단을 따라 한 10분 가량 올라가면 나오는 낙가산 중턱의 눈썹바위 아래에 새겨져 있다. 절에서부터의 거리는 약 1km가량 된다. 오르는 길이 제법 가파르기 때문에 계단은 지그재그 식으로 놓았다. 이 불사를 기념하는 `관음성전계단불사공덕비'가 중간에 놓여 있다. 계단이 놓여졌다고는 하나 눈썹바위로 올라가는 길 자체가 워낙 급한 까닭에 한달음에 올라갈거리는 못된다. 가다 보면 제법 다리에 힘도 들고 허리가 뻣뻣해지기도 한다. 이럴 때 `관세음보살'을 마음속으로, 혹은 나지막이 외우며 올라가노라면 문득 어느새 관음보살님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마애관음좌상은 1928년 배선주 주지스님이 보문사가 관음 성지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금강산 표훈사(表訓寺)의 이화응(李華應)스님과 더불어 이곳에 새긴 것으로, 크기는 높이 920cm, 너비 330cm에 달하는 거상(巨像)이다.

크기를 척수로 환산하면 높이 32척에 너비가 11척이 되는데, 이것은 곧 관음보살의 32응신(應身)과 11면(面)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 관음 좌상 약간 비스듬히 나 있는 바위면에 새겨졌는데, 위의 바위가 마치 지붕처럼 돌출되어 있어 비바람으로부터 관음부처님을 가려 주고 있다.

관음 좌상의 양식을 보면, 네모진 얼굴에 커다란 보관을 쓰고 두 손을 모아 정성스레 정병(淨甁)을 받쳐든 채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다. 얼굴에 비해 다소 크게 느껴지는 코 입 귀는 투박하기는 하지만 그만큼 서민적이라 보는 사람의 마음도 푸근해지 며 정감이 간다. 또 부처님 얼굴에 빠짐없이 있기 마련인 백호(白毫)도 이마 사이에 솟아 있다. 가슴에는 `만(卍)'자가 새겨져 있다.

불의(佛衣)는 양쪽 어깨를 모두 감싸도록 입는 통견(通肩)을 무릎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다. 연화대좌 왼편, 그러니까 관음을 바라보아 오른쪽에는 `조불화응선사(造佛華應禪師)'가 그리고 그 반대편 위패 모양으로 새긴 구획 안에도 `화엄회상필부사왕중(華嚴會上八部四王衆)·나무화엄회상욕색제천중(南無華嚴會上欲色諸天衆)·화엄회상호법선신중(華嚴會上護法善神衆)' 등의 글씨가 세 줄로 새겨져 있다.

이 관음상은 비록 작품이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이곳이 관음 도량의 성지인 동시에 기도(祈禱) 성지임을 나타내는 상징성에서 그 의의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래서 이곳에서 정성으로 기도 드리면 이루어지지 않는 소원이 없다 하여 지금도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인천광역시유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되어 있다.

 

<윤장대>

책장의 일종으로 불교에서는 경전을 넣은 책장을 돌리면 경전을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한다.

윤장 또는 전륜장(轉輪藏)·전륜경장(轉輪經藏)이라고도 한다.

중심에 기둥을 세우고 기둥에 의지하여 원형 또는 다각형의 나무장을 올린 뒤 여기에 경전을 넣고 손잡이로 돌릴 수 있도록 만든다.

경전은 경장뿐 아니라 율(律)과 논(論), 여러 고승들의 장소(章疏)도 함께 넣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