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산책(101127)

2010. 11. 28. 00:53<문화유산>/문화유산

최근에 백내장에 걸린 오른쪽 눈을 수술하였더니 당분간은 세수는 물론 머리감기를 삼가하고 등산, 조깅 등 심한 운동을 하지 말라고 한다. 1-2개월 동안은 등산을 하지 못할 운명인 지라 등산대신 가볍게 서울시내의 명소들을 찾아 순례하기로 하였다. 우선 조선의 5대 궁궐을 순례하기로 하고 제일 먼저 창경궁을 찾았다. 창경궁하면 창경원이 제일먼저 떠오른다. 일본놈들이 창경궁을 창경원이란 이름의 동물원으로 만들어서 시민들의 구경거리로 만들었고 해방이후에도 봄철이면 벚꽃놀이 인파로 그야 말로 인산인해였는데 요즘세대들이 창경원이란 애기를 하면 못알아 듣는 것으로 보아 궁궐로 복원된지도 괘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창경궁으로 가기 위해 혜화역 부근에서 내렸다. 마로니에 공원 부근에 즐비한 연극 전용극장을 보니 문득 연극을 관람한지도 괘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내어 연극도 관람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국립서울과학관은 정말 오랜만이다. 고등학교다닐 때 과학전시회를 관람한 적이 있었는데 몇몇 친구들은 담을 넘어 창경원, 창덕궁에 갔었다는 무용담을 그 다음날 자랑스럽게 애기했었다. 복원된 창경궁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창경원내 동물 우리들이 어디에 있었는지 기억이 없다. 다만 식물원은 옛날 그대로 남아 있는 듯한데 모르겠다. 복원된 전각들이 생각보다는 많지는 않았지만 전각마다 얽힌 사연들은 역사가 되었고 드라마가 되었고 전설이 되어가고 있었다.

▲ 통명전(왼쪽)과 양화당(오른쪽)

▲ 혜화역 마로니에 공원

▲ 샘터 파랑새 극장 앞

▲ 샘터 파랑새 극장

▲ 창경궁 가는 길

▲ 이정귀의 집터.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분인데 조선후기 4대 문장가라고 함.

▲ 국립서울과학관 앞 기념비. 박정희 대통령 친필

▲ 국립서울과학과과 창경궁 사이의 도로

▲ 창경궁 입구 도착

▲ 창경궁의 정문 홍화문

▲ 홍화문

▲ 창경궁 안내도

▲ 요약하면 세종대왕 원년(1418년)에 상왕인 태종을 위해 수강궁을 지었다. 성종15년(1484년)에는 세조의 비 정희왕후, 덕종의 비 소혜왕후, 예종의 비 안순왕후를 위해 명정전, 문정전, 통명전을 지어 창경궁으로 개명하였다. 창경궁은 임진왜란때 불탄 것(선조25년, 1592년)을 광해군 8년(1616년) 다시 지었으나 순조30년(1830년) 화재로 대부분 소실되었고 순조 34년(1834년)에 다시 지었다. 명정전, 명전문, 홍화문은 광해군 8년 중건이후 원형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명정전은 조선왕궁의 정전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국보 226호로 지정되어 있다. 1983-1986.8월까지 창경원을 창경궁으로 복원하였다.

▲ 명전문. 명전전으로 들어가는 문

▲ 궁궐 배치도

▲ 홍화문 설명문. 홍화문앞에 함춘원(서울대 병원 쪽)을 세워 무과시험을 치르게 하였다

▲ 옥천교, 풍수지리설에 따라 궁궐앞에는 물(금천)이 흐르도록 설계되었다. 한쌍의 홍예교위에 돌다리를 만들었고 난간위에는 출입자를 감시하는 동물을 배치했다. 홍예교 중간에 땅의 악귀를 쫒는 귀면을 새겼다.

▲ 명전전 설명문

▲ 명전전 일원 배치도

▲ 명전전 앞에 있는 박석과 품계석

▲ 국보 226호 조선궁궐의 정전중 가장 오래된 건물. 국가적인 의식이 있을 때는 하월대에 악공들을 배치하고 상월대에는 종친들이 배석했다. 

▲ 왕권을 상징하는 일월오봉병. 해는 왕, 달은 중전, 오봉은 동서남북 중앙을 의미하는 것으로 국토를 상징한다.

▲ 숭문당. 왕이 공부하던 곳. 하루 세번의 경연이 있었다.

▲ 함인정. 신하들과 더불어 국사를 논하고 환담하였다.

▲ 경춘전과 환경전 설명문

▲ 경춘전. 경춘전은 성종 14년(1483년)에 건립하고 임진왜란때 불탄 것을 광해군 8년에 재건하였으며 순조 30년에 또다시 불탄 것을 순조 34년(1834년)에 재건하였다. 경춘전은 정조(1752년), 헌종(1827년)이 탄생한 곳이며, 성종의 어머니 소혜왕후 한씨(1504년),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 민씨(1701년),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1815년)가 승하한 곳이다. 정조와 순조의 경우 경춘전에 대한 애정과 공경이 대단하였는데, 정조의 경우 "탄생전"이란 현판을 남문에 써서 걸었고, 혜경궁홍씨를 추모하는 글 "경춘전기" 341자를 써서 북문에 걸었으며, 자신이 태어나기 전날 밤 꿈에 용이 경춘전에 들어왔다하여 직접 용을 그려 경춘전 동쪽벽에 걸기도 하였다. 순조역시 "경춘전기"를 써서 바쳤다. 정조와 순조때에는 경춘전이 효와 공경의 공간으로 상징된 곳이다. 경춘전 현판은 순조의 어필이다. 

▲ 환경전. 환경전은 왕의 침전으로 세자가 이용하기도 하였다. 중종이 이곳에서 승하하고 익종이 승하했을 때 빈궁으로 사용하였다. 청에서 돌아온 소현세자가 기거하였고 이곳에서 독살(?)되었다. 현재 환경전은 보수공사 중이다

▲ 통명전과 양화당 설명문

▲ 통명전. 통명전은 창경궁에서 가장 큰 내전으로 왕비의 침전이다. 다른 전각과는 다르게 용마루가 없으며 건물옆에 돌난간이 있는 장방형의 연지가 있다. 숙종때 장희빈이 통명전 일대에 흉물을 묻어 인현황후를 저주하다가 사약을 받았다. 통명전에 용마루가 없는 이유는 통명전은 왕비의 침전이기 때문이다. 즉 왕은 곧 용이니 용이 다음 대를 이을 용을 생산하는 곳이 바로 침전으로 다른 용이 지붕위에서 임금(용)을 짖누루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건실한 후손을 얻기 위해서는 땅과 하늘의 기운을 받아야 하니 이를 가로막는 용마루를 없앤 것이며, 무거운 용마루를 없앰으로서 왕비가 순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보물 제818호로 경춘전(景春殿)의 서북쪽에 있으며,  1575년(선조 8)에 이 전각에서 인순왕후가 승하했다. 성종 15년(1484)에 처음 지었던 건물이 임진왜란의 피해로 불에 타 버려 광해군 때 고쳐 지었으나 정조14년(1790) 다시 화재로 소실되었다. 지금 있는 건물은 순조 34년(1834) 창경궁을 고쳐 세울 때 같이 지은 것이다. 내부현판은 순조의 어필이다. 현재 창경궁에 남아 있는 내전 가운데 유일하게 월대가 있는 전각이다

▲ 양화당. 양화당은 통명전의 부속건물 역할을 하였다.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환궁한 곳이며(인조14년, 1636년), 청나라 사신을 영접한 곳이다. 고종15년(1787년)에는 청종비인 철인왕후가 이곳에서 승하하였다. 현판은 순조의 어필이며, 순조34년 중건되었다.  

▲ 영춘헌과 집복헌 설명문

▲ 영춘헌. 영춘헌은 정조의 효심이 잘 드러난 곳이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태어난 집복헌 앞에 별도의 건물 영춘헌을 마련하였다. 만천하에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을 드러내고 명예을 회복시키고저 하는 그의 의지가 드러난 곳이 바로 영춘헌이다. 남향인 영춘헌은 내전 건물이다. 집복헌은 영춘헌의 서쪽 방향에 5칸으로 연결된 서행각이다. 집복헌에서는 사도세자와 순조가 탄생했다. 정조는 순조를 낳은 수빈 박씨를 총애해 집복헌에 자주 출입하면서가까운 영춘헌을 독서실 겸 집무실로 이용하였다.정조는 1800년(정조 24년)6월 28일 유시(오후 5~7시) 영춘헌에서 눈을 감았다. 조선왕조실록은 정조의 승하 당시의 모습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이날 유시에 상이 창경궁 영춘헌에서 승하하였는데, 이날 햇빛이 어른거리고 삼각산(북한산)이 울었다

▲ 통명전, 양화당, 집복헌, 영춘헌(좌측으로 부터)

 

▲ 풍기대. 풍기대를 이용하여 바람을 관측한 것은 조선 세종 때 측우기의 발명과 더불어 제도화된 것으로 보인다. 바람은 24방향으로 관측했으며, 바람의 세기도 강우량과 같이 8단계로 나누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증보문헌비고 增補文獻備考〉 상위고(象緯考) 권3 중 "대궐 가운데에 풍기(風旗)가 있는데, 예로부터 바람을 점치려는 뜻에서 창덕궁(昌德宮)의 통제문(通濟門) 안과, 경희궁(慶熙宮)의 서화문(西華門) 안에 돌을 설치하고 거기에 풍기죽을 꽂아놓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 내용으로 보아 현존하는 경복궁과 창경궁의 풍기대는 1770년(영조 46)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또 그후에 제작된 풍기대가 현재 창덕궁의 연경당(演慶堂) 앞뜰에 남아 있다.

 

▲ 앙부일구. 앙부일영(仰釜日影)이라고도 한다. 네 발 달린 반구형(半球形)의 솥처럼 생겼기 때문에 앙부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것은 원사 元史〉천문지(天文志) 앙의(仰儀)에 있는 곽수경법(郭守敬法)에 의해 만들었다고 하나 앙의와는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세종 때 처음 만들었으며 이후 조선말까지 계속해서 만든 대표적인 해시계로 공중용으로 설치해놓는 것과 작게 만들어 휴대할 수 있는 것이 있다

▲ 성종태실과 태실비

▲ 춘당지

 

▲ 식물원

▲ 통명전 후원 인절미 바위

▲ 늦가을의 정취가 남아 있는 후원

▲ 후원 단풍

▲ 오층석탑

▲ 관천대

 

▲ 문정전은 창경궁 창건 때 편전으로 건립되었다. 즉 명정전이 조회 등 공식적인 행사를 하는 정전이라면 문정전은 평상시 신하들과 항께 정무를 보던 편전인 것이다. .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명정전과 함께 중건된 바 있으며 지금의 건물은 1986년 창경궁 중창공사 때 중건된 것이다. 참고로 경복궁에서 정전은 근정전이고 편전은 사정전이다. 최근에는 숭례문 방화범이 숭례문을 방화하기 전에 방화를 시도했던 곳이기도 하다.  

▲ 문정전 앞 뜰. 이곳에서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힌지 8일만에 숨졌다.

▲ 빨갛게 익은 산수유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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