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경운궁) 산책(101205)

2010. 12. 5. 23:47<문화유산>/문화유산

덕수궁은 임진왜란이후 1593년(선조26) 월산대군의 저택을 임시 궁궐로 삼아 '정릉동 행궁'이라 불린이후 1611년 광해군이 청덕궁으로 옮겨 가면서 '경운궁'이라 이름지었다. 경운궁이 다시 궁궐로 사용된 것은 러시아 공관에 있던 고종이 이곳으로 옮겨 오면서 부터이다(1907년). 고종은 러시아 공관에서 돌아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대한제국의 위상에 맞추어 경운궁의 전각들을 다시 세워 일으켰다. 당시의 궁궐규모는 현재 정동과 시청앞 광장일대를 아우르는 규모로 현재 궁역의 3배에 가까웠다. 고종이 일제의 강압에 의해 왕위에서 물러난 후 경운궁은 '덕수궁'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고종에게 왕위를 물려받은 순종이 청덕궁으로 옮기면서 고종에게 장수를 비는 뜻으로 '덕수'라는 궁호를 올린것이 그대로 궁궐이름이 된것이다. 07년 고종황제가 거처하면서 덕수궁으로 부르게 되었다. 덕수궁은 인조반정과 즉위, 고종의 대한제국 선포등 조선 후기 역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궁궐이다<문화재청>

▲ 대한문의 본래 이름은 대안문으로 대한제국 출범이후 덕수궁의 동문인 대한문이 정문이 되었다고 합니다. 수문장 교대식 장면

 

 

 

 

 

▲ 금천교 앞 하마비. 대소인원 개하마

▲ 1986년 발굴 복원된 금천교

 

 

▲ 정전의 정문인 중화문. 경복궁으ㅐㅣ 광화문, 창덕궁의 돈화문, 경희궁의 흥화문 처럼 모든 궁궐의 정문은 남쪽에 그리고 백성을 교화한다는 의미를 담은 화자를 이름에 넣었다. 덕수궁 본래 정문인 인화문도 중화문앞 남쪽에 있었다. <문화재청> 

 

▲ 중화전. 덕수궁의 정전. 황제국의 정전이므로 창호를 황색으로 칠하였다. 원래는 중층이였으나 1904년 불이 난후 다시 지으면서 단층으로 축소되었다.

▲ 중화전 내부

▲ 함령전. 고종의 편전이자 침전으로 고종이 이곳에서 승하하였다. 다른 궁궐과 달리 덕수궁에 왕비의 침전이 없는 것은 명성황후가 승하한뒤 고종이 다시 왕비를 맞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문화재청>.

 

 

▲ 보수공사중인 덕흥전. 왕비의 침전을 대신한 것은 명성황후의 신주와 위패를 모신 경효전이 였고. 1904년 대화재 때 소실되고 그자리에 덕흥전을 세웠다. 덕승전은 외국사신을 접견할 목적으로 지은 전각으로 외부는 한옥이지만 내부는 서양식으로 꾸몄다. <문화재청>

▲ 정관헌. 함령전 뒤편에 자리잡고 있는 정관현은 궁궐 후원의 정자기능을 대신하여 지은 전각으로 고종은 이곳을 외국 외교관들과 연회를 열고 커피를 마시는 장소로 애용하였다.  

 

 

▲ 유현문.

 

▲ 석어당. 선조가 거처하다 승하한 곳

▲ 즉조당. 광해군과 인조가 즉위한 곳

 

 

▲ 석조전. 고종황제가 침전겸 편전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서양식 석조 건물. 1910년 완공

▲ 석조전 서관. 현재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음. 1938년 완공.

 

 

▲ 광명문. 함녕전의 정문이였으나 현재는 멀리 떨어져 석조전 맞은 편 숲에 따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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